※스포주의※ 완독 후 열람 추천! ┃개자식 레터┃
'오스카'라는 복잡한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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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친애하는 님!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의 담당 편집자 덩굴입니다. (집에 있는 덩굴식물이 봄을 맞아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별명을 붙여보았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레터네요. 오늘은 제가 소설을 편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인물, 오스카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눠보려 합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소설 결말부 내용이 살짝 언급될 듯한데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서는 책을 다 읽으신 후 레터를 보시는 쪽을 권장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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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좀 억지 아닌가요? —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변화하는 순간까지
편집 작업에 들어가며 도서를 처음 읽은 뒤, 무척 재밌기도 했지만 어딘가 살짝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소설 속 목소리의 1/3을 넘게 차지하는 오스카 캐릭터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거든요. 많은 분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지난번 만우절 레터 적힌 해외평처럼, 소설이 오스카가 저지른 “남성 폭력을 축소한다”라는 의견에 저 역시 일면 동의하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명백히 잘못을 저질렀고, 목격자도 많다는데 잘못을 계속해서 부인하는 오스카 캐릭터가 작위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가해자에게 이렇게 많은 발언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도 들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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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오스카가 변화하는 순간은 너무 손쉽게 찾아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작품에서 오스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변화하는 가장 큰 변곡점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낭독회 행사에 참여했을 때입니다. 오스카는 이때 팟캐스트 제작자 ‘파니’에게 스토킹을 당하게 되는데요. 종일 주위를 맴돌며 집착하는 파니 때문에 불안을 느끼다가 오스카는 돌연 조에에게 자신이 파니 같은 존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억울하다고, 자신은 아무 잘못 없다고 우기다가 이렇게 단 하루, 한순간에요. 조에의 고발을 내내 곱씹고 있었을 테니 그럴 수 있을까 싶다가도, 아무리 그래도 반성과 뉘우침이 너무 도식적으로 그려진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편집을 하며 몇 차례 되풀이해서 책을 읽어가던 중, 저는 레베카와 편지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오스카 삶이 끊임없이 균열 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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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나의 일이기도. — 타자의 것이라 여긴 감정이 스스로에게 닿는 순간
이를테면 어느 날, 오스카는 래퍼 릴 나스 엑스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자신의 기억 저 아래 묻혀 있던 ‘사미르’라는 남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소설 초반, 오스카는 누나 코린이 자신에게 처음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기억을 이야기하며 ‘누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그 비밀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식의 말을 합니다. 누나의 퀴어성을 누구보다도 타자의 것으로 여기던 그였지만, 그는 자신 역시도 남성과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으며 누나처럼 퀴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고 고백합니다. 자신과는 아득히 멀다고 굳게 믿고 배척한 것이 이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음을 깨달은 순간. 오스카의 삶에 큰 균열이 발생했음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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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스카는 자신이 조에에게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은 이후로 조에의 블로그를 열심히 읽어가는데요. 틱톡에서 사이버불링 대상이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자신의 열두 살짜리 딸에게도 언제든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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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글에서 언급한 여자의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딸이 떠올랐습니다. 그 일이 우리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으며, 온라인의 어떤 여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은 거죠.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3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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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락 한 단락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라 처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결국 이런 순간이 쌓이고 쌓여 오스카를 변화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대의 기본 조건은 나란히 같이 설 수 있는 마음이라고들 하잖아요. 저는 같이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의 위치에 나를 나란히 두고 살펴볼 수 있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일이 당신만의 일이 아니고, 나의 일이기도 하다는 마음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동할 수 있는 가장 기본 요소는 우리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가지고 있을 자신 안의 소수자성을 깨닫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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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에게는 자신의 퀴어성을 깨달은 순간이 다른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작은 마음을 열어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다르다고 멀리했던 누나 코린이나,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피해자 조에와도요.)
또 오스카는 작중에서 노동계급 출신이기도 하죠. 한때는 이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의 계급적 소수자성이 연대의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뻗어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의 딸에게도, 또 자신에게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가하는 폭력이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거나 몸소 체험합니다. 이 모든 경험이 쌓이고 쌓여 그에게 균열을 내며, 그가 ‘나와는 영영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던 상황과 사람을 이해할 미약한 실마리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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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하면 보일지도요. — 글 쓰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삶과 연대의 실마리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결국 이 모든 과정이 삶을 반추하는 글쓰기 과정에서 일어난다는 점이 더욱 깊게 다가왔습니다. 일기를 즐겨 쓰신다면 알겠지만, 늘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듯한 평범한 하루도 매일매일 기록하다 보면 뻔한 사건이 다른 의미가 되어 다가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스쳐 지나간 일도 막상 기록하고 나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글로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을 저는 자주 겪거든요.
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소설 속 레베카와 오스카의 편지 역시 삶의 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고,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 내 안의 약한 부분을 찾고, 다른 이가 가진 약한 부분에 덧대어 보기도 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반경을 넓혀가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의 물음인 ‘우리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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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데팡트는 한 인터뷰에서 《친애하는 개자식에게》가 서로 극명히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에서 탄생한 소설이었다고 말합니다.
레베카와 오스카 사이에 오간 수십 장의 편지가, 조에가 남긴 여러 편의 블로그 글이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 탄생했음을 새삼 다시 느끼며, 데팡트가 거쳐간 지난한 시도만큼 이 소설을 다시 또 읽고 읽을 때마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릴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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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지면이 작은 관계로 여기서 이만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동안 재밌게 읽어주시고, 다정한 말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루는 소재도 이야깃거리도 많은 작품인 만큼 앞으로 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책도 즐겁게 읽어주시고, 어떻게 읽으셨는지 많이 나눠주세요!🥺
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럼, 앞으로 또 좋은 기회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비채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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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번역자, 김미정 선생님과 함께하는
🌠 〈밤의 북클럽〉 지금 신청하고, 깊은 이야기 나눠요!
📅 4월 21일(월) 오후 7:30 밤의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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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자식 레터〉 다섯 번째, 어떠셨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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